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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경주 Second home

2021년 여름, 경주 1

by 두번째 집 2021. 10. 1.

8월 중순 여름휴가 3일 중 첫날, 경주로 떠날 채비를 한다.

 

대구로 향하는 길위의 풍경

코로나로 인해, 천안에서 경주로 가는 직행 버스노선이 사라졌다. 대신 천안에서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한 후, 경주 방면 기차로 환승해야 한다. 오후 1시, 동대구역을 가기 위해 천안역에서 기차에 오른다. 이제야 휴가가 시작됐다고 실감이 난다. 동대구역에서 경주방향으로 출발하는 무궁화호는 객실 칸이 3량이다. 비인기 노선이라 그런지, 배차간격도 길고 타는 사람도 20명 남짓이다. 1시간 조금 넘게 터덜터덜 리듬을 타는 기차에 몸을 실으니 고향에 돌아가는 기분이다.

오후 느즈막의 경주역

경주역에 내렸다. 기억 속에 있는 익숙한 풍경이 나를 반긴다. 넓은 광장, 맞은편에 보이는 윗 시장과 은행, 역전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다. 익숙한 길을 따라 은행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봉황대로 향하는 골목길은 여전하다. 전과 다른 점은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골목에서 밥을 먹고 쇼핑을 했다. 최근 황리단 길이 생긴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이 골목을 찾지 않는 듯하다. 거리 위에 보이는 사람들 모두 목적지를 향해 어디론가 갈 뿐이다. 나 또한 그러니 할 말이 없다. 임대 스티커가 붙어있는 상가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켠이 씁쓸하다.

봉황대 고분

봉황대 옆에 있는 단골 게스트하우스에 인사차 들린다. 인사드리러 올 때마다 사장님께선 매번 자리에 계신다. 정정하신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자녀분과 청귤을 손질하고 계셨는데, 8월에 잠깐 수확하는 귤 이라며 이걸로 청을 만들면 진짜 맛있다고 하신다. 속까지 파란 게 꼭 라임처럼 생겼다. 천안에서 선물로 사 온 호두과자를 드리고 이내 길을 나선다. 경주에 올 때면 항상 이곳에서 머물렀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코로나 이후로 다인실을 없애고 개인룸만 운영하신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여행객들과 모여 술 한잔 하는 운치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분위기를 누릴 수 없으니 아쉽다. 어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큰길 변에 도미토리를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선다. 숙소 앞에 물회를 파는 식당이 보인다. 마침 저녁때라 식당에서 물회를 주문한다. 포항, 경주, 울산에서는 물회를 시키면 매운탕을 서비스로 준다. 대충 구색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생선, 미나리, 무 등 정석으로 끓여내 제공한다. 밥 한 공기 반씩 덜어내 물회, 매운탕 각각 말아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어둑어둑 해지는 봉황대 골목

대릉원 한 바퀴를 돌아 봉황대로 향한다. 잔디도 깔려있고 산책로도 정비되어있는 모습을 보니 정돈이 깨나 잘 되어있다. 멍하니 봉황대를 바라보다 괜히 생각이 많아진다. 혼자 인 시간이 쓸쓸하다. 20대까지만 해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익숙하고 좋았다. 혼자 미술관에 가고, 여행 가고, 밥 먹고, 술을 마시는 등 혼자 무언갈 하는 것을 익숙하다 못해 당연한 것처럼 즐겼다. 30대에 접어든 순간부터 혼자 인 시간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다. 혼자 하는 것이 익숙 하기에 관성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즐겁다. 사람들이 서른에 접어들면 결혼할 사람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 이런 기분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울감을 털어내고자 황리단길로 걸음 한다. 이 거리는 초입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가족과 연인들은 거리를 걸으며 주변 가게를 구경하기 일색이다. 거리의 가게들은 독특한 컨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사장님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다. 오후에 보았던 구도심 골목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전보다 젊은 사람이 많아지고 도시가 활기를 띄어가는 모습을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경주의 매력을 알아가는 것 같아 사뭇 기쁘다. 거리에서 파는 디저트 하나 베어 물며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쓴다.

 

깊은 밤 대릉원 근처 펍에서 한잔

매번 오는 봉황대 쉼터에서, 오늘만큼 누군가와 이 순간을 나누고 싶다고 열망한 적이 없었다. 대릉원 돌담길, 박물관 뒤 자전거길, 교래리 산책길, 봉황대 공원, 윗 시장에서 파는 피순대와 우엉 김밥, 그리고 낮은 건물들 너머 보이는 널따란 하늘, 내가 좋아하는 경주의 순간들을 누군가가 함께 공유하고 싶다. 나의 친구, 미래의 애인이 이것들을 좋아하고 그것들로부터 안온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다음에 또 혼자인 시간이 생기면 경주에 오게 될까? 글쎄, 모르겠다. 가을의 경주는 정말로 누군가와 같이 오고 싶다. 울긋불긋한 타오르는 도시의 전경으로부터 마음의 안온함을 받아가고 싶다. 이제 같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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