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 요즘 들어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의 풍파를 맞은 탓인지, 점점 현실을 직시해가는 때 일수도 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결혼도 그런 것 같다. 어릴 때는 사랑만 보고 달려가고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었지만, 이제와서는 현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10대와 20대 초반의 나는. 결혼은 먼 미래의 일이기에 그저 막연히 생각하곤 했다. 그저 30대 즈음 지날 때, 누구나 하는 통과의례가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친구들은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기에, 미래에는 나 또한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리라 생각했다.
20대 중반이 되었다. 나는 의욕적이며 독립적인 성격을 띄기 시작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고, 남미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이 세상에는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교류하는 것은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았다. 결혼은 언젠가 하겠지 싶지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여행 생활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20대 후반, 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에서 일을 시작했다. 점점 현실이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50%에 가까운 이혼율, 턱없이 비싼 집값, 비싼 양육비 등 다가오지 않은 미래 지만, 더 이상 남 일이 아니었다. 속된 말로 여행을 갈지 말지 고민할 때는 가라는 말이 있다. 안 가서 후회하는 것보다 가서 보고 나서 후회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결혼은 어떨까. 결혼하고 후회하는 것이 나을까? 결혼생활을 동경하며 안 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나을까? 못해봄에 대한 아쉬움은 생각을 떨쳐내버리면 그만이지만, 결혼 후에 후회하면 이미 늦었다. 사회적으로 부부로써 묶여있고 재산 또한 공동인 경우가 많다. 맘이 안 맞아 이혼하더라도, 과정은 복잡하며 돌싱이라는 꼬리표가 달린다. 덜컥 겁이 났다. 정말 맘 맞는 사람이 있다면 하는 게 좋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 절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간다.
30대가 되었다. 주변 지인들이 하나 둘 씩 결혼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단짝을 찾아내 일생의 연을 맺는 것이 부러웠다.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되 돌아 보게 된다. 나는 결혼을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도 행복한데 결혼이 꼭 필요할까? 결혼은 남의 이야기인 걸까? 고민을 이어가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며칠 전, 글 한편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비혼을 고민하는 당신이여, 당신의 20대는 멋지고 아름답다. 주변에 친구들도 많다. 커플인 친구도 있겠지만 같이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데는 제약이 없다. 다 같이 밥도 먹고 여행도 갈 수 있다. 혼자 꿈을 키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30대가 되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주변에는 점점 결혼한 친구들이 생긴다. 친구들을 만나면 결혼생활, 육아에 대한 주제가 주를 이룬다. 때때로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멋지고 아름답다. 활력이 넘치고 일에 자신감이 넘쳐있을 것이다. 밤 늦게까지 놀아도 지치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은 결혼을 안한 네가 부럽다며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40대가 되었다.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있다. 당신은 혼자다.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젊다. 친구의 생일이 되었다. 이제는 친구보다는 가족이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은 당신을 부르지 않는다. 가족이 우선이다. 남편과 아들 딸들과 함께 멋진 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는 소식만 카톡을 통해 사진으로 보았다. 하지만 부럽지 않다. 성공한 당신은 혼자서 저곳을 예약해서 식사할 수 있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솔로 라이프의 숨은 뜻은 '가족도 없이 수십 년간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혼자가 되겠다'이다. 평생 혼자가 되는 길을 가는 당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50대가 되었다. 좀 있으면 환갑이 다가온다. 시간이 가파르게 흐른다. 어느덧 세상에 혼자 남겨질 시기가 찾아왔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간이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 당신에겐 좀 더 일찍 찾아왔을 뿐이다. 당신의 얼굴에는 흰머리가 나고 주름이 늘어난다. 당신은 더 이상 젊은 시절만큼 아름답지 않다.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어느 때부터인지 점점 줄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만나기도 어렵다. 어쩌면 본인이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임을 가진다. 친구의 장성한 아들이 모임장소에 바래다주며 어머니 친구분들과 맛있는 식사 하라고 용돈을 주고 간다. 당신은 사회적으로 성공했기에 돈이 있고 스스로 운전도 할 수 있기에, 친구 아들이 친구를 바래다줘도 부럽지 않다. 모임이 늦게까지 이어진다. 친구들의 핸드폰이 울리며 아들, 딸, 배우자의 연락이 온다. 가족들이 걱정해준다. 하지만 당신의 휴대폰은 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혼자이기 때문이다.
60대가 되었다. 당신의 생일이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서로가 힘이 되어주고, 서로에게 자극이 되며, 서로에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던 친구가 되어주기에는, 친구들은 더 큰 힘이 되어줄 아들과 딸이 있고 모든 일에 우선하는 가족들이 있다. 더이상 서로에게 보탬이 되는 친구 관계가 될 수 없는 나이 이기에, 친구들은 나의 생일마저 어느덧 잊었다. 당신은 혼자다.
기억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곳은 당신의 생의 마지막날인 병실이다. 당신은 여전히 혼자다. 친구들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친구'의 존재를 아들과 딸에게 말하지 않는다. 친구들도 당신을 보며 '결혼하지 않고 혼자사는 사람'이 무엇인지 이제는 명확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당신도 어쩌면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당신도 굳이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고 혼자 죽어가는 걸 택했다. 왠지 구차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같은 병실을 쓰는 옆자리 자신 또래의 환자는 아들과 딸, 손주, 그리고 배우자가 곁을 지킨다. 가족들이 그 환자의 손을 붙잡아 주며 눈물을 흘려주지만, 당신의 손은 하염없이 텅빈 허공만을 움켜쥐고 있다. 당신의 주변만은 격리된 것처럼 조용하다. 애꿋은 담요 끄트머리를 붙잡는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세상의 마지막이 찾아오고 있다. 시야가 가물가물하다.
당신의 마지막 날에 가지고 갈 기억은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는가? 혼자 가을날 단풍을 친구삼아 걷던 그 골목인가? 느지막한 오후, 혼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던 그때 인가? 그 어느 순간에도 당신은 혼자다. 당신은 눈을 감는 마지막 날에 '성공한 삶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성공한 삶이었다고 스스로 생각이 든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성공했다. 돈도 많이 벌고, 혼자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혼자서 큰 식당에서 맛있는 밥도 먹었다. 하지만 성공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당신은 행복했는가? 마지막 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부디 '불행하였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텅 비어버린 병실에서 스스로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비참함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가족의 구성원으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평범하게 사는 것. 사람으로 태어나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스스로 버리지 마시길 바란다.
시간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흘러간다.
'나의 자식은 바라지도 않고, 적어도 일평생 함께할 반려자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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