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14살로 거슬러간다. 2004년 2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부모님께서 중학생이 되면 휴대폰이 필요하다며, 카메라가 달린 싸이언 폴더폰을 사주셨다. 무려 30만 화소였다.(이땐 카메라 없는 휴대폰도 많았다.) 중학교 3년 내내 이 휴대폰만 사용하며 신나게 보냈었던 것 같다. 별다른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학교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사진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나에게는 참 특별한 동아리였고 추억이 많이 깃든 곳이다. 우리는 필름 카메라만 사용했고, 그중에서도 흑백 필름만 사용했다. 필름을 찍은 후, 현상 및 인화까지 모두 직접 할 수 있었다. 사진학과 학생들도 쉬이 접하기 힘든 경험들이었기에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필름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가 기억난다. 2010년 봄 수원 화성, 첫 동아리 출사였다. 코닥 Tmax100/36을 캐논 AE-1에 끼웠다. 뷰파인더를 통해 본 풍경은 뿌옇고 낯설었다. 신기했지만, 이를 능숙하게 다루기까지는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원하는 것을 찍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은 몰랐다.(잘 찍게 된 것은 나중일이다.) 원하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선 다음 동작들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원하는 피사체를 향해 초점이 잘 맞았는지, 노출은 적정한지, 내가 원하는 구도인지 확인한다. 조건이 충족된다면 가슴에 카메라를 밀착하여 최대한 떨림을 줄이고 호흡을 들이 마신 다음 천천히 내쉼과 동시에 셔터를 누른다. 다음 사진을 위해 와인더를 감는다. 나의 미숙한 실력으로는 바라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초점과 노출이 잘 맞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기뻐했었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면서 사진을 신중히 찍게 되었다. 필름 한통 6000원이고 약 36컷이 담겨있다. 대략 컷당 170원 인 셈이다. 원하는 순간이 보이면 찍어야 하지만, 잘못 찍을 때마다 날아가는 돈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했다. 전시회 준비기간이 다가오면 마음은 더 무거웠다. 출사 다녀온 후, 필름을 현상해보니 노출과다로 필름에 상이 제대로 맺혀있지 않다. 또는 밀착지는 괜찮아 보이기에 인화기에 걸어 확대해보니, 주요 피사체에 초점이 나가 있다.(이외에 필름에 먼지가 박혀있는 등 어려움이 많다.) 전시회 작품은 내야 하고, 날리면 사진을 다시 찍어와야 하는데 용돈은 부족하고... 매 전시회 준비기간마다 고생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에 대해서는 유독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필름을 현상하고 나면 보관지에 끼워놓은 후, 촬영날짜와 장소를 적어놓는다. 이따금 필름을 꺼내본다. 형광등이나 휴대폰 라이트를 필름 뒤편에 비추어야 잘 보인다. 첫 번째 컷부터 차례대로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날 날씨는 어땠는지, 어디에 갔었으며, 무엇에 관심이 있었고, 누구와 함께 했는지 떠오른다. 한 컷씩 들인 정성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필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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