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시절, 드라마'논스톱'을 보며 대학교 생활을 꿈꿨다. 동아리 활동이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던 나는 집 근처 대학교에 무난히 합격했다. 우리 학교는 동아리가 많은 편이었다. 기타, 서예, 힙합, 태권도, 검도 등 보편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활동들은 다 동아리로 존재했었다. 하지만, 사진동아리만큼은 유독 특별해 보였다. 예술사진동아리, 사진 중에서도 필름 사진, 그중에서도 흑백 필름만 사용한다고 한다. 사진을 직접 현상 및 인화를 하고, 겨울방학 때는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한다. 대학교 동아리가 외부 전시회까지 하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드디어 예술에 몸을 담가보는구나싶어, 바로 가입했다.
고향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사진이라는 한 주제로 여러 사람과 교류할 수 있었던 모임은 매 순간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매 주말마다 서울 근교에 같이 출사도 다녀오고, 때때로 자취방에서 파티를 열기도 하며, 방학 시즌에는 6박 7일 동안 숙식을 함께하는 장기 출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해도 우리 동기들과 몇몇 사람들과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좋은 기억이 많지만서도 전시회 기간은 꽤 고통스러웠다. 예술사진동아리인 만큼, 출품용 사진에 있어 비판의 정도가 심했다. 작품 낼 사진이 없으면 재출사를 다녀왔고, 인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암실에서 밤을 새우며 인화를 이어간 적도 있다.
아래의 상황은 모두 내가 겪은 일이다.
결과물의 중요 피사체에 초점이 안맞으면 OUT
수평이 안맞으면 OUT 또는 프레임을 움직여 구도 변경
노출이 맞지 않아 필름에 상이 정확히 맺히지 않아 결과물의 퀄리티에 영향을 줄 경우 OUT
필름에 먼지가 박혀 결과물에 영향을 줄 경우, 필름 세척 후 인화 재시도 -> 그대로 남아 있으면 OUT
내가 신입생 때는 '왜 이렇게 까다로운 걸까?' 싶던 적이 많았다. 막상 동아리를 이끌어 가는 집행부가 되어 보니, 그때 그 선배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사진을 작품으로 내려고 하니, 전시회를 진행해 본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했겠다 싶다.
별첨
필름 현상&인화에 손을 뗀 지 수년이 지났지만...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놓아야겠다.
자가 현상 준비물: 현상용 통, 릴(필름 감기용), 암팩(필름 감을 때 사용), 현상액(D-76), 정착액(Rapid fixer)
우리 동아리에선 현상약품 가루를 사서 직접 물에 타서 만들었다.(더 저렴하다.) 물 3L에 온도는 21도로 유지하고 가루를 조금 붓는다. 막대기로 계속 저으며 가루가 다 녹으면 다시 붓는다. 온도는 수시로 체크한다. 이 과정을 약 한 봉지를 다 사용할 때까지 반복한다. 정착액은 물에 1:1 비율로 희석해서 사용했다.
흑백 필름 자가 현상 방법 (ISO100 기준으로 작성)
1. 암팩 안에 필름, 릴, 현상용 통을 넣은 뒤, 빛이 새지 않도록 꼭 잠근다.
2. 암팩에 양 손을 넣고 필름을 꺼내 릴에 끼운 후, 살살 돌려서 감는다.
3. 필름을 릴에 다 감은 다음, 현상통에 넣고 마개로 고정시킨다.
4. 현상액 온도를 22도에 맞춘 뒤 현상통에 부음과 동시에 시간을 잰다.
5. 30초마다 위아래로 3회 흔들어준다. 3분 30초 동안 반복한다. (더 많이 흔들수록 콘트라스트가 강해진다.)
5. 시간이 지나면 현상액을 옮겨 담은 다음, 현상 통에 물을 부어 잔여 현상액을 씻어낸다.
6. 정착액을 21도에 맞춘 뒤 현상통에 붓고 현상액과 똑같은 방법으로 3분 30초 동안 흔들어준다.
7. 시간이 지나면 용액을 옮겨 담고 현상통에 물을 부어 씻어낸다.
8. 2~3분 정도 더 지나고 현상통을 분리하여 필름을 꺼낸다음, 물에 담가 잔여 약품을 제거한다.
(ISO100 기준 5분이면 충분했으며, ISO400은 20분 정도 물에 담가 주는 것이 좋다.)
9. 릴에서 필름을 꺼낸 다음, 집게로 집어 행거에 걸어 말린다.(먼지가 묻지 않도록 주의)
10. 필름이 다 말랐다면(여유 있게 하루정도) 6컷씩 자른 다음 필름지에 넣어 보관한다.
현상이 끝나면 인화를 해야 한다. 인화는 현상보다 훨씬 까다롭다. 인화하려는 사진에 따라 특별한 기술적인 방법도 동원된다.
자가 인화 준비물: 인화기, 인화지(5x7_테스트용, 8x10_밀착지용 or 11x14inch_작품용), 인화지 프레임 홀더, 콘트라스트 필터, 암등, 인화액(덱톨),중간 정지액(물), 정착액(레피드 픽서), 집게
흑백 필름 자가 인화 방법
1. 필름을 인화기 안 필름 홀더에 고정시킨다.
2. 암실 문을 잠그고 전등은 끈 뒤, 암등을 켠다.
3. 사진의 콘트라스트를 어떻게 표현할지(강하게 or 약하게) 정하고 조리개를 조절한다. (조일수록 약하고 열수록 강해진다.)
4. 초점링을 돌려 사진의 초점을 맞춘다.
5. 콘트라스트 필터를 끼운다.(0부터 5까지 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콘트라스트 효과가 더 강해진다.)
6. 인화지를 가로 10cm 세로 3센티 정도 찢은 다음, 5초씩 빛을 누적해서 쬐며 적정 노출값을 찾는다. (첫 부분 25초 20초 15초 10초 5초 끝부분)
7. 대략적인 값을 찾았으면 더 세부적으로 빛을 쬐어 정확한 값을 찾는다. (예를 들어 15초~20초 사이의 빛이 적정 노출인 것 같으면 22초 20초 18초 16초 14초 12초 이런 식으로 범위를 좁혀가며 테스트한다.)
8. 정확한 노출값을 찾았다면, 필름을 보아 세 군데 정도 부분 테스트를 진행한다. (주요 피사체, 육안상 필름에 흠집 or먼지가 있는 부분을 주로 체크)
9. 부분 테스트를 2회 진행해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1차 작품 인화를 시도한다.
9-1. 빛을 쬔 인화지는 바람을 불어 먼지를 날려준 후, 인화액에 담가 15초~30초 정도 흔들어준다.
9-2. 색이 잘 우러나왔다 싶으면, 중간정지액에 담가 인화액을 씻어낸다.
9-3. 인화지를 약 15초 흔들어 준 뒤, 정착액에 담근다. 다시 15초 정도 흔들어 준 후 전등을 켠다.
10. 문제없으면 바로 작품용 사진으로 출품 가능하다.(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11. 이상이 있다면 그 부분을 수정하여 1번부터 반복한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아래와 같다.
- 부분 테스트 때 안보였으나, 인화했을 때 가로로 흠집이 보일 경우 (보관지에 필름을 거칠게 넣을 때 발생)
- 물때가 보일 경우 (필름을 말리면서 물방울을 제대로 털지 않으면 필름상 얼룩이 남는다.)
- 생각했던 것보다 콘트라스트가 과하거나 약할 경우 (이 경우는 조금만 수정하면 되므로 양호한 편이다.)
이 외에, 구름을 부분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버닝이라는 기법을, 또는 주요 피사체의 디테일을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해 닷징이라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때때로 구름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 300초 동안 구름에 빛을 쬐어 주기도 했다.
막상 적고 보니, 생각보다 디테일한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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