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첫 해외여행 3
Day 7 part 2 <뉴욕의 마천루 위에서>
지하철이랑은 무언가 다를 거라 기대했지만, 예상은 그대로 빗나갔다. 더럽고 낡았으며 냄새가 난다. 전철은 출발하자마자 이내 지하로 스며든다.
2편은 여기서! 2021.03.01 - [Travel/2015 in US] - 뉴욕, 첫 해외여행 2
점심을 먹기 위해 50st에서 내려 Hope 조형물이 있는 곳까지 걸어간다. 유명한 곳이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스트릿 푸드 중에선 할랄가이즈가 제일 인기가 많다고 하더니, 그 가게만 줄이 있었다. 15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되었고, 치킨비프콤보를 주문했다. 손바닥 2개 크기만 한 알루미늄 그릇에 길쭉한 쌀, 자잘하게 썬 양파와 양상추를 얹고 그 위로 고기를 수북이 쌓는다. 며칠 동안 계속 먹었던 햄버거와는 엄청 비교가 되었다. 이 음식이 훨씬 싸고 몸에도 좋아 보였다. 받은 소스 2가지를 밥 위에 뿌린 다음 숟가락으로 살살 저어 한입 한다. 신선한 재료 덕분인지 잡내는 나지 않았고 담백한 고기에 렌치 소스의 깔끔한 기름진 맛과 스리라차 소스의 매콤함이 어우러져 환상의 조합을 자아냈다. 야채까지 함께 먹으니 식감이 더욱 풍성해졌다. 거의 2인분에 가까운 양이었지만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치웠다. 든든한 배를 이끌고 록펠러센터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평일보다 사람이 더 붐비는 것 같다.
뉴욕시내를 한눈에 보기 위해선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여러 전망대 중에서 나는 록펠러 센터를 선택했다. 이유는 2가지다. 센트럴파크랑 가깝기에 공원 전체가 잘 보인다는 것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또렷이 보이는 것
나는 인터넷으로 입장권을 미리 예매했다. 일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전망대에는 사람이 붐볐다. 시내가 보이는 자리마다 사람들로 꽉 차있어 제대로 구경하려면 뒤에서 좀 기다려야 했다. 밑에서 고층빌딩을 올려만 보다가, 뻥 뚫린 스카이라인을 마주하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방향으로 사진을 찍다가 손을 내려놓고 바라본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나서야, 나는 센트럴파크가 왜 뉴욕의 심장, 허파라고 불리는지 깨닫게 되었다. 두 강 사이로 빌딩이 가득한 맨해튼, 도시 중심에는 거대한 푸른 정원이 펼쳐져있다. 누가와도 호불호가 없을 그런 곳. 쉬었다 가기 좋은 넓은 들판, 산책하기 좋은 울창한 숲, 오리가 살고 있는 호수. 그렇게 센트럴파크는 뉴욕을 품고 있다. 이런 공간이 없었다면 뉴욕이 지금과 같은 세계의 수도가 될 수 있었을까? 글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센트럴파크를 바라보며 멍 때린 지 30분 정도 지난 것 같다. 시간이 꽤 지난 거 같아 다른 곳도 찬찬히 둘러본다. 한 주간 내가 다녔었던 곳들을 찾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거린다. 이쁜 야경사진을 담기 위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잘 보이는 곳에 미리 자리를 잡는다. 가로등과 건물들로부터 불빛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멋진 야경이다. 그 이상의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숙소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다 센트럴파크를 다시 마주했다. 가로등이 꺼진 건지 밤의 센트럴파크는 아주 어두웠다. 주변 건물들의 불빛이 켜진 것으로 구역 표시를 대신하는 것 같다. 밤에 홀로 공원을 가로지르면 사고가 날듯 싶다. 뉴욕에서 7일이나 보내니, 이제 지하철은 아주 능숙하게 탈 수 있게 되었다. 숙소에 들어와 씻고 다시 채비한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Day 8 <워싱턴D.C. 데이트립>
뉴욕에 가기로 확정된 순간부터, 나는 워싱턴D.C.에 가고 싶었다. 미국 SF영화에 꼭 한 번은 나오는 그곳. 워싱턴 기념탑, 국회의사당, 백악관, 펜타곤 등 미국의 역사가 함축된 그 도시. 내 눈으로 직접 느끼고 싶었다.
워싱턴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Mega bus가 가장 저렴했다. 나는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1달 전에 미리 버스표를 예매했으며 왕복 27$ 지불했다. 탑승장소는 West 34th St & 11 Ave이다. 복귀할 때는 시내 지하철 근처에 내려준다.
오전 4시 40분, 숙소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34st Penn Station에서 내린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꽤 있었다. 버스정류장은 11 Ave에 있기에 2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후기에 따르면, 버스정류장 같지 않은 곳에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터미널은 없으며, 표지판만 하나 달려있다. 탑승시간인 6시가 가까워오니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나온다. 시간에 맞춰 오면 사람들 있는 곳에 따라 모이면 되는 것 같다.
버스는 약속된 시간보다 10분이 지나 출발했다. 버스가 참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도시를 오가는 장거리 운행에 특화된 구조인지, 마치 가족이 앉는 것 마냥 4자리가 서로를 마주 보게 되어있고 자리마다 콘센트가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화장실이 있다. 버스 안에 화장실 있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한국에도 도입됐으면 좋겠다. 그럼 버스 타면서 전전긍긍할 일이 대폭 줄지 않을까? 버스는 필라델피아, 볼티모어를 지나 Washington Union Station에 도착했다. 이곳은 기차도 다니고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도 왕래하는 것을 보니 복합 터미널인 것 같다. 역의 모양새가 유럽에서나 볼법한 건물처럼 아주 수려하다.
도시를 돌아다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나는 Capital Bike를 선택했다.(뉴욕의 City Bike와 동일하다.) 8$만 내면 하루 종일 자전거를 빌리고 반납하면서 탈 수 있다. 여러 번 빌릴 수 있는 대신, 빌린 후 30분 안에 반납을 해야 하며, 30분을 초과할 경우 추가금을 내야 한다. 초과시간 30분마다 2$ 씩 내야 한다. 초행길인 나는, 30분은 금방이란 생각에 매번 반납할 곳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실상 반납할 곳은 널려있었으며, 워싱턴은 생각만큼 넓지 않았다.
돈을 지불하고, 역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 국회의사당(U.S Capitol)으로 향했다. 지저분하고 소란스러운 뉴욕과는 달리, 워싱턴은 정 반대의 분위기를 품고 있다. 높은 빌딩이 없기에 주변 광경이 막힘이 없고, 거리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공원 곳곳에는 사람이 널려있고 햇빛을 즐기는 듯 보인다. 미국의 수도다운 여유로움이 풍긴다.
국회의사당에 도착했고 자전거를 반납했다. 돔 형태의 지붕과 대리석 외관은 그리스의 신전을 방불케 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루브르 박물관과 판테온 신전에서 영감을 받아지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이주해 와 역사가 짧으니, 유럽 사람들보다 더 멋지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지의 결과 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건물에서는 일한다면 자부심이 절로 생기겠다.
자전거를 다시 타 Nasa를 지나 백악관(The White house)에 도착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풍경이 눈앞에 실재하니 기분이 묘했지만, 실제로 봤다는 성취감? 그 외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엄청난 감명을 받아야 하는 그런 장소 아닌가? 싶으면서도, 나에게 그만큼의 가치가 느껴지는 곳인가? 하면 글쎄.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쉽다. 지나가다가 한번 들리면 좋을 정도,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곳. 청와대가 더 멋있다. 백악관 앞뒤로 공원이 있으며, 일정 범위 밖으로만 출입이 가능하다. 이것저것 동상이 있지만, 미국 역사에 무지한 나에게는 그저 길가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 동상이 있으면 또 모르겠다. 공원을 가로질러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에 도착했다. 미국 영화에서 매번 빠지지 않고 나오는 그곳. 꽤 크기에, 백악관에서도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정말 거대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자리 잡은 높이 169m의 거대한 오벨리스크. 워싱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자 상징이다. 국회를 존중하고 그 권위에 경의를 표하는 목적으로 워싱턴D.C.에서는 이 워싱턴 기념탑보다 높은 건물은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받고 있다. 워싱턴D.C.의 중심부는 한 나라, 그것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고층건물이 드물다. -나무위키-
법으로 규제된 덕에, 수도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넓은 하늘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을 보니, 워싱턴 기념탑이 도시의 중심인 듯하다. 이곳을 기점으로 서쪽은 국회의사당, 북쪽은 백악관, 동쪽은 링컨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기점으로부터 각 건물들을 향해 공원이 이어져 있다. 공원 주변으로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마틴 루터 킹 동상 등 미국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을 기리기 위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자유를 인정하고 조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기릴 줄 아는, 미국은 멋진 나라다.
탑을 돌아보니, 표를 사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모양이다. 나는 밑에서 보는 걸로도 만족했기에 바로 이동했다. 2차 세계대전 기념비를 지나 링컨 기념관으로 향한다. 워싱턴 기념탑과 더불어 미국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소, 링컨 기념관과 그 앞에 자리한 연못이 보인다. 초입부터 괜스레 마음이 경건해진다. 급하게 구경하던 지난 시간들과 달리, 천천히 기념관을 향해 걸어가며 여유를 부려본다.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기념하는 건물.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모델로 지었다. 링컨 기념관 앞은 미국 인권운동의 성지 중 하나로 베트남전 반전 시위, 인종차별 반대 집회 등 주옥같은 행사들이 많이 열렸던 곳이다. 1963년 워싱턴 행진 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곳 앞에 운집한 군중 25만 명에게 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의 배경이기도 하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킹 목사가 이곳 계단에서 연설했던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나무위키-
링컨기념관(Lincoln Memorial) 앞에 있는 계단을 오르고 큰 기둥을 지나면 링컨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의자에 위엄 있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정성 들여 세공한 티가 난다. 링컨의 뒤편으로는 음각으로 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이 성전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지켜낸 미국과 그의 기억은 영원이 간직될 것이다."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여러 연방으로 나뉜 미국을 하나로 규합한 그의 업적은 이토록 추앙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였으면, 진심으로 온 힘을 쏟아 통일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대통령 정도는 돼야 이 정도로 추모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옆의 벽에는 링컨 대통령 취임사가 쓰여있고 아래층에는 링컨과 관련된 작은 전시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충분히 시간을 보냈기에 밖으로 나선다. 눈앞에 그림이 펼쳐졌다. 무척 보고 싶었던 풍경이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에 나도 엉덩이를 보탠다. 연못에는 워싱턴 기념탑이 반사되어 보이고 양 옆에는 산책로와 나무가 줄지어 있다. 무척 평화롭다.
가고자 하는 곳 대부분을 방문했고 마지막 목적지인 펜타곤이 남았다. 거리가 좀 있어 30분 안에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안 보고 가기에는 괜히 아쉽다. 링컨기념관 뒤편에 있는 다리를 건너 펜타곤으로 향한다. 생각보다 길이 복잡하여 길을 헤맸다. 출발한 지 15분이 되어갈 때쯤 Pentagon North Parking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먼발치에서 사진을 찍으며 지켜본 것에 만족하고 이내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온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었기에 어렵지 않았고, 자전거는 제시간에 반납할 수 있었다.
백악관 주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생각을 한다. 목표한 곳은 다 방문했지만,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 사이에 있는 공원은 아직 가보지 않았기에, 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워싱턴 기념탑에서 오른쪽으로 뻗어 있는 공원에는 수많은 미국 국기가 나부끼며, 좌우로 스미스소니언 내셔널 뮤지엄, 자연사박물관, 아트갤러리 등 다양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워싱턴 시내 건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이쁘다. 이탈리아나 그리스 어딘가 있을법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가장 이쁜 건물을 선택해 들어간다.
워싱턴D.C. 중심부에 있는 대부분의 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다. 대신 기부금을 받는다. (관례로 2~5$ 정도)
으레 보통의 박물관들은 실내를 잘 분할 해 파트별로 많은 작품을 보여주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항공우주박물관은 나의 상식을 깨는 곳이었다. 한국이었으면 외부에서 비를 맞으며 전시될 비행기 따위의 큰 전시품이, 이곳에서는 실내에 전시되어 있다. 축소된 모형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었던 비행기다. 우주 탐험에 쓰일법한 추진체 로켓, 소형 탐사선까지 전부 실물로 전시를 했다. 미국인의 집념에 감동했다. 우리나라였으면 과연 이렇게 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을까 싶다.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돌아갈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나는 미리 터미널에 도착한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나서 6시 정각에 버스에 오른다. 워싱턴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우리는 이런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표현해 낸 하나의 그림 같은 곳 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 크고 많아 보이려 하는 것이 아닌, 비움의 미학이 무엇인지 아는 도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
올 때는 버스 1층에 탔기에, 갈 때는 2층에 머무른다. 2층은 1층과 달리 일반적인 좌석이다. 피곤함에 잠을 쭉 자던 찰나, 버스가 멈춰있다. 잠깐 쉬고 가는 건가 싶어 개의치 않았는데 버스가 계속 서있다. 이상해서 밑에 내려와 다른 승객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운전기사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8시간 풀로 일했고 오늘(월요일)은 11시 반부터 지금까지 일 하고 있다면서, 일을 더 이상 못하겠다고 파업을 했단다. 지도를 보니 뉴욕까지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도착하고 사측에 따져도 될 일을, 굳이 우리에게 피해를 줘가며 본인 권리를 챙기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그 버스기사는 장정 2시간이나 버텼고, 다른 기사가 와서야 버스는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12시 반쯤 뉴욕에 도착했다. 지하철역 바로 옆에 내려줬기에, 숙소까지는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내일 오후 1시 반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했기에, 미리 짐을 싸 두어야 한다. 언제 잠들 수 있을까.
Day 9 <일상으로의 복귀>
아침에 모여 인원체크를 하고, 숙소에 왔던 날처럼 팀별로 흩어져 공항까지 알아서 간다. 첫 해외여행이어서 그런지, 집에 너무 가기 싫다. 벌써 집 가는 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다사다난했던 뉴욕을 뒤로하고 인천행 비행기에 오른다. 뉴욕에 오던 날과 같이 사육의 연속이다. 앉아서 먹고 영화 보고 자고. 이변은 없다. 가는 날은 하루를 벌어서 신났는데, 오는 날은 하루를 까먹는다. 23일 오후 1시 반에 출발한 비행기는 24일 오후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여행은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