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2020

야간 산행을 다녀와서(2020.11월)

두번째 집 2021. 3. 5. 21:30

야간산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인터넷에서 한 글을 본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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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려고 지리산에 오른 청년

  한 청년은 힘들고 우울한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여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지리산에서 뛰어내려 죽기로 마음먹고, 서울에서 야간 버스를 탔다. 버스는 등산객들로 만원이었다. 새벽 3시, 버스에서 내리고 혼자 남았다. 전재산은 2만 원뿐이었고 자살할 생각이었기에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얕은 곳에서 죽으면 쉽게 발견될 테니 깊은 곳에서 죽을 생각이었다.

 

  새벽 산은 온통 까맸으며 발밑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걷다 보니, 뒤에 어떤 노부부가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맞닥뜨렸을 때, 학생이 새벽이 랜턴도 없이 여길 어떻게 오르냐며 들고 있던 랜턴을 청년에게 건네주었다. 청년은 이 호의가 불편했다. 죽을 건데 괜히 목격자를 만드는 것 같았다. 다시 걷기 시작했고 랜턴은 키지 않았다. 2시간쯤 오르니 서서히 날이 밝아왔고 대피소가 가까워왔다. 어서 죽을 자리를 찾아야 했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험한 길로 발을 틀었다. 죽을 곳이 마땅치 않아 계속 걷다 보니 대피소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길은 대피소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새벽 6시임에도 불구하고, 대피소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죽기 싫어서 이것저것 핑계 대며 계속 미루는 건가 싶어, 이번엔 진짜로 죽을 요량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대피소에서 막 나오신 아주머니 3분이 청년을 보곤 혼자 이러고 올라왔냐며 생수 한 병, 양말 한 켤레, 초코바, 마가렛뜨를 나눠주셨다. 여전히 죽고 싶었지만 어느새 날이 밝아 오전 7시가 되었다. 날이 밝기도 하고, 다니는 산길마다 사람들이 있어 죽을 수가 없었다. 결국 정상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천왕봉 너머가 너무 아름다웠다. 현실 같지 않았다. 정상에서 몇 시간을 멍하니 홀로 앉아 있었다. 올라오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을 보고 인생을 되돌아보고 휴대폰으로 지리산의 풍경을 찍었다. 이 순간, 청년은 죽기로 한 마음을 모두 접어버렸다.

  산 정상에서 본 일출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한 청년의 마음까지 바꿔놓았을까? 그래서 일출이 보고 싶어 졌다. 간월재의 가을 억새가 이쁘다 하여, 가을이 더 가기 전에 집을 나선다. 언양으로 가는 버스는 경주에만 있기에 반나절 구경하고 갈 심산이다. 경주는 이번까지 총 4번째 방문이다. 나의 제2의 고향 같은 곳, 경주에 관해서는 따로 글을 써야겠다. 늦지 않은 저녁, 언양행 버스에 올랐다. 홀로 경상도 시골 어딘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낯설었다. 노곤함에 눈이 감길 찰나 언양에 도착했다. 등억온천단지에서 출발할 예정이라 근처에 방을 잡았다. 일출 예정시간 06:50, 정상까지 약 2시간 걸리므로 3시 50분 알람을 맞춘다.

새벽 등산길 - 홍류폭포방면

  다음날, 제시간에 일어나 채비를 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뜨거운 커피를 챙긴다. 너무 일찍 나왔는지 주변에 사람이 없다. 외국이었으면 괜스레 무서워 못 돌아다녔을 텐데 감회가 새롭다. 등산로 입구를 지나 손전등에 의지하여 산에 오른다. 나중에 찾아보니, 야간 산행은 헤드랜턴을 챙겨야 한다고 한다. 손전등이라 그런지 빛을 비춰도 주변이 너무 어둡다. 등산로에는 나 혼자고 깜깜하며 주변에는 스산한 바람이 부니 괜스레 무서워진다. 그 청년은 어떻게 산을 오를 수 있었을까 싶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정신없이 발을 놀린다. 1시간쯤 지나 잠시 숨을 돌린다. 주변 나무는 낮아져 있고 달빛이 주변을 비춘다. 그새 안도감이 든다. 무서움을 털어냈다는 기분에 심취하여 산을 계속 오른다.

가을의 간월재

  간월재에 도착하니 6시 반쯤 되었고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 청년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저 밑에서부터 걸어온 내가 대견스러웠다. 간월재에는 이미 도착한 등산객이 있었다. 반대편 등산로로 올라온 듯싶다. 나는 간월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싶어 서둘러 움직인다. 정상에 도착했으나 주변이 나무로 둘러져있어서 인지, 생각했던 것만큼 일출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반대편 능선에서 오시는 분들께 사진을 찍어드리고 나는 다시 간월재로 향한다. 해가 조금 올라온 탓인지 억새밭이 황금빛에 물들어있다. 간월재에 내려오다 말고 중간에 털썩 앉아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정말 황홀하다.

 

  한 시간쯤 멍 때리고 나니, 건너편 능선도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가 더 오르기 전에 신불산으로 향한다. 능선이 가팔라 숨이 절로 차오른다. 돌아올 때는 어떻게 내려오나 싶다. 삼십 분쯤 지나 정상에 도착했다. 신불산 정상은 넓고 주변 풍경이 잘 보여서 좋다. 만약 간월재에 다시 온다면, 일출은 꼭 신불산에서 봐야겠다. 간단히 간식을 먹고 다시 간월재로 내려간다. 아까와는 달리 제법 사람이 있다. 다들 억새 풍경에 취해 행복해 보인다.

산 위에서 마주하는 억새는 이날 처음이었다.

  휴게소에서 컵라면 하나를 사 와 김밥과 함께 먹고, 왔던 길로 다시 하산한다. 새벽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산 능선에는 가을이 절정이다. 다음 주가 되면 금방 떨어질 것처럼 색을 뽐내고 있다. 다음번에는 친구와 같이 오고 싶다. 이날, 혼자 하는 등산은 조금 무섭고 쓸쓸했다.